처음 이 책의 제목을 봤을때는 굉장한 호기심으로 목차를 펼쳐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제목보다 훨씬 더 흥미를 이끄는 소제목들이 목차에 나열되어 있는것이 아닌가. 이 책은 소제목을 읽는 것만으로도 재미를 주는 책이다.
배움의 의미
나는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가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그리고 '무엇을 아는지'를 공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다.
철학 뿐만 아니라 모든 배움이 그러한것 같다. "내가 모르는 것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아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안다는 것은 진정으로 알고 있는것인가? 그렇다면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안다는 것에대한 생각은 이전 글인 여행의 이유에서 고민해 보았다.
빵 한개로 배를 채우고, 책 열 권으로 정신을 채워라
채워지지 않는 욕구로 말미암아 소모되는 에너지 역시 엄청나다는 사실을 아는가.
우리가 해야할 일을 놓아두고 그저 하고 싶은 일만 한다면, 할 일을 함으로써 소비되는 에너지보다도 그 일을 하지 않아 생기는 자책, 불안들이 우리를 더욱 힘들게 만든다. 배가 고프거나 하는 육체적인 아픔보다더 더 큰 정신적인 고통이 찾아오게 된다. 해야할 일을 미루지 말고 끝 없는 정신적 고픔을 채워나가며 에피쿠로스의 "물과 빵만 있으면 나는 신도 부럽지 않다." 처럼 정신의 성장을 이뤄내고자 한다.
커피가 침대라면
우리가 하는 말 속에서 우리는 그 안에 담긴 사회와 전통의 가치관이 과연 나의 진심과 생각으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그저 언어의 시스템 속에 좌우되고 있는 건 아닌지 한 번쯤 생각해보아햐 한다
우리가 자주하는 질문인 "학교어디 나왔어요?"하는 질문에 "아 저는 고등학교 밖에 안나왔습니다.", "중졸이라, 중학교밖에 못나왔습니다."하는 식의 답변들을 종종 받을때가 있다. 여기서 '밖에'라는 말로 우리는 대학을 가지 못한것을 부끄러워 한다. 이것이 우리 사회가 만든 언어의 시스템이다. 학교를 어디나왔냐는 질문에 대학교를 다니지 않았다면 부끄러워 하는등 자신의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회의 가치관을 언어의 형태로 생각을 거치지 않고 입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을 가지게 만들었다. 언어란 그저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시스템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라고 다시 한번 각인하게 되었다. 또한 우리가 생각없이 하는 단순한 말이 사회의 틀에 박혀버린 편협한 말은 아닐지 경계해야 겠다.
변해야 할 것과 변하지 않아야 할 것
무엇을 변화해야 하고, 무엇을 유지해야 할지, 그것은 오롯이 자신의 선택이다. 시간의 흐름과 세상의 이치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변화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렇다는 뜻이다. 적어도 나에게 주어진 것만큼은 충분히 우리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흔히들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나면 너무 변했다거나, 옛날이랑 똑같다 거나 하는 말들을 주고 받고는 한다. 두 표현에 좋고 나쁨이 있지는 않다. 세상엔 변하지 않는 것을 보고 아름답다거나 변해가는 것들이 아름답다라고 하듯이. 하지만 우리가 변할지 변하지 않을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뻔히 좋지 않은 행동들을 노력을 통해 바꾸어 나가면 우린 더욱 가치있는 사람이 되며, 좋은 습관들은 유지하며 우리의 삶을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무엇이 좋은 변화고 좋은 유지일지는 책 속에서 많은 깨닳음을 얻을 수 있다.
카르페 디엠!
당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원함으로써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망치지 말라. 당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당신이 한때는 그것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속한다.
에피쿠로스는 정신적 괘락과 지속적인 마음의 평안을 추구했다. 쾌락을 추구한 철학자 에피쿠로스마저도 물질적 쾌락을 통해서 스스로를 욕심과 공허함에 몰아넣지 말고 지금 가진것들을 얻게 된 행운들에 감사하여 마음의 평안을 추고하며, 정신적으로 쾌락을 추구하며 지금 이 순간에 충실히 행복하라.
삶의 지혜
두려움은 또 다른 두려움을 낳는다
대부분의 걱정이 나쁜 이유는 일차성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르 더 깊은 걱정으로 끌고 가 생각과 마음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항상 얼굴이 밝고 긍정적인 사람들에게 비결을 물어보면 대부분 "다시 주어진 오늘에 감사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아마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 대신 다시 주어진 오늘을 어떻게 살까에 대한 설렘으로 존재를 채워나갈 것이다.
오늘을 어제의 걱정들로 지새우며 두려움에 떨면서 살지마라. 그저 오늘이 다시 왔다는 사실에 행복해 하며, 매 순간의 존재에 행복해 한다면 어제 보다 더 행복하진 못하더라도 똑같은 하루가 온 오늘에 어제만큼은 행복하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두려움이 더 큰 두러움을 만든다면 오늘이 나에게 주어진 이유가 그 걱정을 해결하는 날이라고 생각하자, 두려움에 잠식당해 하루를 불행하게 보내지 말고, 그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오늘이 존재한다고 여기자.
우리는 누구를 위해 자비를 베푸는가?
가장 지혜롭고 이성적인 이기주의자
책에서는 이기심을 두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자신을 위해 돈, 명예 등을 축적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더 많은 것을 누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력해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마음,
둘째. 일생을 통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혜, 정의, 아름다움, 선함을 쫓는 마음 역시 이기심이다.
이 중 첫 번째 이기심은 비난받을 이기심이면 두 번째 이기심은 숭고한 일이라고 한다.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죽은은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거기에 없으며, 죽음이 있을 때는 우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 문장은 에피쿠로스가 편지에 쓴 글로 그의 생각을 알 수 있다. 에피쿠로스는 죽음을 그 순간 존재와 인식이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죽음의 순간을 두려워 하기 보다는 죽기 전 까지의 삶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데 힘을 쓰는게 어떨까
내가 기다리는 고도는?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어차피 기다려야 하는 삶이라면 내가 그 희망을 향해 적극적으로 걸어가는 사람이 되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사람들은 '기다림'을 '미학'이라 표현한다. 결국 희망을 놓지 않고 기다린다면 우리 삶은 이미 아름다운 것임을 기억하길.
희망은 이루어 지지 않아도 가지는 것 만으로도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희망 자체 만으로도 아름답다고 여기여 그것을 향해 나아가다보면 아름다움 뒤에 더 큰 무언가가 기다리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라도 희망을 한번 가져보자.
나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
'저 사람 갑자기 왜 저래?'가 아니라 그게 그 사람이었던 거고, 인식하지 못한 새로운 모습을 만나게 되었을 뿐임을.
칸트는 객관적 실체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저 의식에 의한 존재만이 있다고 말한다. 그 사람의 본질이 무엇인가? 그 본질은 타고날때 부터 있는것인가? 그것은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것 우리는 사람사람마다에게서 다른 평가를 받는다 그저 그 사람들의 인식속에서 나라는 사람이 정의될 뿐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볼때도 마친가지다. 그는 내 인식속에서 특정 행동을 할 뿐이였다. 나는 그 사람을 내가 인식하는 만큼 만 안다. 따라서 내 예상과 다른 행동을 한다면, 그건 사람이 바뀐것이 아니라, 내가 인식을 바꿔야 하는 것이다. 남이 바뀐것이 아니라, 내가 바뀌어야 하는 것이였다.
이해는 폭력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상대방도 알거라는 착각. 내가 이해하고 인지한 그대로 상대도 이해하리란 착각. 그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순간 그건 상대방에게 폭력이 된다.
나의 정의가 타인을 찌르지 않도록
한국의 가을 하늘 아래에서 베트남인들은 "춥다라고 말할 것이고, 에스키모인들은 "따뜻하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한국인인 나는 누구의 말이 맞다고 할까? 그저 나의 대답은 '선선하다'이다.
이 두 파트는 일맥상통한다. 나의 기준은 나에게만 작용할 뿐이다. 나의 정의를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이아니라. 내가 타인의 정의를 받아들인다면 어떨까.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기 위해 남을 아름답지 않다고 말하는게 아니라 더 아름다운 것을 찾아보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상에 정답은 하나인것 보다 아닌게 더 많다는 것을 인정하고 오히려 다른 답을 찾아 보는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다 왔어, 힘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한조각 기쁨을 그 안에 숨기지 않은 슬픔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힘들고 슬플 때 포기하는 건 어리석다. 오히려 그때 더 힘을 내어, 슬픔 속에 내재된 기쁨을 기대해도 된다.
아픔이 없는 기쁨은 없다는 걸 기억하길.
슬픔을 너무 슬퍼하지 말자. 슬프기에 우리는 기쁠것이다. 너무 힘들고 슬플땐 가끔 놓아버리자, 한 조각 기쁨을 위해 너무 많은 슬픔을 흘리면 아프니깐.
철학 책을 거의 처음 읽어 본것 같은데, 생각보다 재미있는 철학 내용이 많이 있어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나 에피쿠로스에 관련된 책들을 더 찾아서 읽어 보고 싶어졌다. 지적 허영심이 아닌 진심으로 지성인이 되고 싶어서 생긴 욕구이다. 소크라테스처럼 사형 전에도 배움을 추구할 순 없을지 언정, 몸은 늙더라고 정신은 젊게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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